본문
PEN : 플래티넘 프로시언 만년필
INK : 잉크 카트리지 블루
PAPER : 마루망 26공 바인도 루즈리프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기사단장 죽이기 중
숲의 정적 속에서는 시간이 지나고 인생이 흘러가는 소리마저 들려올 것 같았다. 한 사람이 가고 다른 사람이 온다. 한 생각이 가고 다른 생각이 온다. 반복되는 나날 속에서 조금씩 무너졌다가 재생된다. 무엇하나 같은 장소에 머물지 않는다. 그리고 시간은 상실된다. 시간은 내 등 뒤에서 조금씩 죽은 모래가 되어 무너지고 사라진다. 나는 그 구덩이 앞에 앉아 시간이 죽어가는 소리에 마냥 귀를 기울였다.
이런 시
이상
역사를 하노라고 따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 내어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보니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큰 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니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틑날 나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 온데 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 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 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사랑의 물리학
김인육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이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이규보
진주 이슬 머금은 모란꽃을
새색시 꺾어들고 창가를 지나네
빙긋이 웃으며 신랑에게 묻기를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짓궃은 신랑 장난치기를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꽃이 더 예쁘단 말에 토라진 새색시
꽃가지를 밟아 뭉개고는
꽃이 저보다 예쁘거든
오늘 밤은 꽃과 함께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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